‘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실존 인물 연기 부담… 답답함 있었지만” [인터뷰]

인터뷰 2020. 02.14(금)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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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이병헌에게 한계가 있을까. 매 작품마다 최고의 연기를 보이는 이병헌이지만, 그의 속마음에는 많은 스트레스와 걱정이 따랐다. 이번 ‘남산의 부장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더욱 힘든 점이 많았다.

최근 개봉한 실제 있었던 사건의 동명의 취재록을 영화화한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 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을 저지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병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김규평으로 분한다.

원작에 입각해 스토리를 구상했으나 당시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개인적인 욕심 혹은 민주주의를 위해 대의로 총살한 것인지 등 여러 의견으로 나뉘어 총살 계기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만큼 ‘남산의 부장들’도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게 상당히 신경을 썼다. 특히 김규평이 박용각(곽도원)의 말을 듣고 불안해하는 모습, 후배 곽상천(이희준)에게 밀리고 분노를 삭이는 모습, 박통(이성민)의 통화를 엿듣고 결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사의와 대의 모두 해석될 수 있는 여지로 표현했다.

영화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는 것은 우민호 감독의 의도였다. 감독과 생각이 같았던 이병헌은 자신의 연기로 하여금 관객들이 편향된 생각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김재규의 진정한 의도에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실제적으로 김재규가 그런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서 분분하다. 대의였을까, 개인적인 감정이었을까, 계획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있었던 아주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고 해서 실제와 다르게 규정짓는 것은 저도 별로다. 감독님과 한 쪽의 시선으로 보는 영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누누이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욱 감정이 복합적이었다. 이 영화가 어떤 결론이 나고, 관객이 봐야하는 목표지점이 있고, 그런 가운데 저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런 것을 가슴 속에 두고 연기를 했었다.”

무엇보다 주의하고 신경 쓴 부분은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배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보단 정해진 연기를 해야 한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매번 ‘인생 연기’를 보여주고 이번 작품 역시 그의 진가를 다시 확인케 하는 연기였음에도 그에게 부담이 전혀 안 되지는 않을 터였다.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고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 해야 하는 행동과 말이 이미 정해져있기 때문에 배우 개인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감정도 내 마음에 따라서 하지 못하는 자유로움이 없어서 틀에 갇혀서 하는 느낌이었다. 힘들고 답답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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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완전한 김규평이었던 이병헌은 그와 닮은 점이 없다고 밝혔다. 맡은 캐릭터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내 연기로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병헌은 김규평과 전혀 닮지 않았다며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저는 곽상천 같은 사람이 있다면 상대하지 않고 포기하는 스타일이다. ‘저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지’하면서 포기하고 내 신경을 건드려서 약 올리는 곽상천 같은 사람을 피한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얘기해서 갈등이 빚어지고 싸우는 게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잠깐 참으면 많은 관계의 사람들이 원래처럼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데, 내가 하나를 꼬집기 시작하고 감정을 드러내면 나 때문에 관계가 다 어색해지고 망가지지 않나. 그래서 사적으로든 영화 촬영장에서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극 중 김규평은 차오르는 화를 잠재울 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 등 넘겨진 머리를 다듬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러한 모습은 이병헌이 실제 김재규의 모습이 담긴 영상에서 따온 습관으로 영화의 몰입을 더한다.

“김재규가 평소엔 가르마도 정확하게 타고 깔끔한 모습이다. 제가 찾아본 자료 중에서는 마지막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장면인데, 머리를 자꾸 넘기더라.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옥중에 머리를 넘길 수 있는 제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여러 날을 지내면서 머리가 자꾸 흘러내려오니 뒤로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아주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야 하는 신에서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차용했다.”

영화는 김규평이 박통과 곽상천이 만난 자리를 몰래 들어가 도청을 하는 것으로 2막이 열린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 김규평은 벽을 타고 건물에 들어가고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박통의 전화를 엿듣는다. 박통의 말을 들은 김규평은 눈빛이 달라진다. 이병헌은 이 장면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이라고 꼽으며 촬영 당시 아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고생했다. 건물에 들어가는 장면을 초반에 찍고 도청은 다른 날에 찍었는데, 비를 너무 많이 뿌리더라. 감독님한테 ‘이런 비가 어딨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비 맞기 싫어서.(웃음) 엄청 심하게 뿌린 비였지 않나. 그래도 건물 안에서 찍은 신들은 감정이 풍만한 내용의 이야기니까 중요한 장면이었다. 연결되는 장면을 나눠서 찍었지만 감정 연결의 어려움은 없었다. 배우가 항상 하는 일이니까. 전에 촬영했던 것에서 마지막 호흡, 감정 상태를 보고 끝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 선에 맞춰야 또 이어서 연기를 하니까. 힘들기도 하지만 배우들이 계속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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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작품마다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목마름을 느낀다. 대중에게 연기 호평을 듣는 것은 다행이라고 느끼지만 안주하지 않는다. 이병헌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이유였다.

“외부에서 좋게 평가해주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기분도 좋다. 하지만 매 작품마다 똑같은 각오와 똑같은 정도의 몰입과 노력을 한다. 그리고 대중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만 갇히긴 싫다. 부담만 계속 가지고 다음번에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저를 자유롭게 못 움직일 것 같다. 편하게 풀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직된 느낌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다. 영화라는 게 사랑받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게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마음이 편하지 ‘나는 더 잘 돼야 하고’이런 강박이 생기면 숨이 막힌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털어버린다.”

이병헌이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매번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엔 이야기의 정확한 의도 파악에 있었다.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캐릭터가 표현하려는 감정에 집중하면 된다와 같은 기본에 가까운 소신으로 항상 최고치를 갱신할 수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최고치, 인생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온전히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내가 연기해야하고, 해야 할 것에 감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캐치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몰입하다보면 실망스러운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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