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이희준 “감정 숨김없는 곽상천, 솔직히 불안했다” [인터뷰]

인터뷰 2020. 02.13(목)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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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이희준이 관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그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곽상천을 통해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은 1990년부터 2년 2개월간 연재된 김충식 기자의 취재기를 담은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중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의 40일을 조명했다.

영화는 당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들의 흔들리는 욕망과 불안을 면밀하게 스크린으로 옮겼다. 2인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미국으로 도주한 뒤 비리를 폭로한 곽병규(곽도원), 곽상천(이희준)과의 경쟁에서 밀린 김규평(이병헌) 등 인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희준은 우민호 감독의 전작 ‘마약왕’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남산의 부장들’ 출연을 제의받았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두근거림과 벅차오름을 느꼈던 그는 25kg을 증량하며 곽상천을 준비해나갔다.

내면의 갈등과 불안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곽상천은 감정 표현이 솔직하다. 화가 치밀면 거침없이 표현하고 자기 뜻과 다른 길을 박통(이성민)에게 제안하는 김규평에게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해라”고 직언을 하기도 한다. 내뱉는 대사 이외에 내면을 표현할 이유가 없는 곽상천을 연기하면서 이희준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고민에 빠졌다.

“곽상천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레이어가 없다. 이전까진 이면의 표현을 즐기면서 연기를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곽상천은 그러한 것들을 제거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밖에 없었다. 김규평에게 ‘똑바로 해’라고 소리치는 게 진짜 똑바로 하라는 뜻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처음에 촬영하고 집에 갈 때는 불안했다. ‘이렇게 해도 되나’하는 걱정이었다. 다른 선배님들은 눈빛과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른 감정을 표현하지 않나. 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커질수록 이희준은 곽상천에 빠져들었다. 곽상천이 왜 박통의 말을 무조건 지지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고들었다. 이희준이 받아들인 곽상천은 박통이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고, 될 수 있으면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는 일이 곧 자신의 역할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차지철이 모티브가 된 곽상천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터지만 박통, 김규평 등과 같은 인물들에 비해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뤄왔으나 차지철을 표현한 역은 많지 않았다. 결국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배우, 이희준의 몫이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런 행동까지 하지’ 싶었다. 하지만 곽상천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를 집중했다. 그리고 곽상천에게 레이어를 씌우는 게 오히려 그 사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느꼈다. 곽상천에게 의뭉스러운 구석을 넣었다면 다른 방향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이 영화 안에서 그 사람이 믿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다. 저도 김규평 역을 맡은 이병헌 선배처럼 눈빛, 호흡, 시선 등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그런 연기는 다른 작품에서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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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천은 김규평과 2인자 자리를 두고 말싸움을 하다 몸싸움까지 번지는 장면에서 “남산으로 가라. 오랜만에 돈가스라도 한 번 먹어보자”라고 말하며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등 몇 안 되는 비소를 터트리게 만든다. 이희준은 “애드리브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며 그의 대사 모두가 곽상천의 꾸밈없는 진심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곽상천은 웃긴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김규평과의 몸싸움은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곽상천의 생각으론 정보부장은 하는데 김규평은 안 하려고 하니까 답답한 것이다. 곽상천이 후배지만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김규평의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답답해서, 선배가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듯하다. 이후에 ‘탱크로 밀어버려라, 돌려라’ 라는 말 역시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좋은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곽상천은 그저 각하를 위해서 존재하고, 그의 손과 발이 되고 싶은데 자신에게 권력욕이 있다는 것이 억울할 것 같다. 저는 곽상천을 오랫동안 공감하고 나서 보니 ‘억울했겠다’ ‘애 많이 썼겠다’라는 말을 해줄 수 있다. 곽상천을 하고 나서 이해의 폭이 달라졌다.(웃음)”

그저 웃으며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그였으나, 곽상천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희준은 비어있는 곽상천의 행간을 빼곡하게 채워나가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지만 오히려 “힘들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며 기분 좋은 작업을 끝낸 듯했다.

“솔직히 힘들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즐거운 긴장감 속에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연기하는 게 행복했다. 김규평이 박통을 총살하는 장면은 15분간 롱테이크여서 아주 공들여 찍었다. 그 장면을 준비하고 촬영할 때도 힘들다는 느낌보다 ‘진짜 재밌다’고 느껴지더라. 백여명이 한 장면을 위해서 준비하고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으니까. 누구 하나 연기에 도움을 주려고 하지,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고 힘들었던 순간은 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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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은 연극 무대로 데뷔해 KBS2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계기로 대중에게 주목 받은 뒤, 다양한 역할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올해 역시 ‘남산의 부장들’을 시작으로 영화 ‘오! 문희’ ‘보고타’ 등에 출연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8년엔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쉼없이 달리고 있는 이유에 그는 “일 중독”이라며 활짝 웃었다.

“다작 지향보다는 중독이다. 우리가 하는 역할이 극적이지 않나. 곽상천도 그렇고 우리가 겪는 일상보다 극적이고 가슴을 던져서 공감하다 보니 일상 속에서보다 흥분되는 극 속의 상황이 짜릿하고 계속 중독되는 것 같다. 또 역할을 할 때마다 나랑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을 이해해보는 시간들이 쉽지 않지만 좋다. 재밌기도 하고. 영화 ‘해무’로 따지면 내가 어부를 만날 일은 없는데 어부를 인터뷰하고 그런 얘기도 듣고 삶의 애환들, 뭐가 두려운지 그런 것들을 나눠본다는 것, ‘1987’을 하면서 그 시대의 기자들은 뭐가 됐을까 하는 공감해보는 시간들, ‘미쓰백’은 한 여자를 이렇게까지 지킬 수 있는 원동력 등을 생각해보는 게 어렵지만 재밌다. ‘남산의 부장들’을 촬영하고 나서도 곽상천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들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쾌감을 느꼈다.”

이희준은 매 작품 속 인물들로 변하면서 연기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선배들을 통해서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승화하고 또 연기로 표현해내는 보람과 재미가 있었다. 많은 작품을 통해서 또 다음을 기대케 하는 이희준의 앞날이 기다려진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이런 게 곧 연기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더 많은 역을 만났을 때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역이 어디까지일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이병헌 선배님은 어디까지 뻗쳐있을지도 궁금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내가 나의 작품이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나한테 궁금함이 사라진다면 관객도 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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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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