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읽기] 김건모 ‘배트맨 티셔츠’, 동경과 동일시의 욕망

트렌드 2020. 01.16(목)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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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김건모
[더셀럽 한숙인 기자] 김건모가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가운데 결과보다 출석일까지 입고 나온 배트맨 티셔츠가 더욱 화제가 됐다.

지난 15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강남경찰서에 출석한 김건모는 이날도 배트맨 티셔츠를 체크셔츠 안에 입어 대중들은 또다시 ‘왜’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를 의식한 듯 12시간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셔츠 단추를 여며서 배트맨 티셔츠를 가렸다.

옷이 패션의 범주로 편입된 이후 생존을 위한 기능적 도구로서 의미는 축소되고 개인적 사회적 자아를 표시하는 수단으로서 가치가 절대적 존재 이유가 됐다. 따라서 특정 패션 아이템에 대한 애착 내지는 집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그럼에도 김건모의 배트맨 티셔츠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인적 사회적 자아를 내보이는데서 한 발 나아가 대다수는 애써 감추고 있는 무의식적 강박증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건모의 배트맨 티셔츠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배트맨 일러스트 래글런 티셔츠’다. 특히 그는 고정 출연했던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화이트 바탕의 블랙 배트맨 일러스트를 기본으로 소매 부분의 컬러만 달리한 디자인을 여러 벌 입고 나와 특별한 애착을 드러냈다.

김건모가 배트맨 티셔츠에 보이는 애착은 선호를 넘어선 강박에 가깝다. 이는 남성성과 스타일, 전혀 다른 두 가지 강박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스타일에 관한 강박은 소위 패션 능력자와 무능력자 모두에게 내제돼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색이나 디자인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미적’ 기준에 근거한다. 물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음에도 고집하는 컬러나 디자인이 있지만 이 역시나 타인의 객관적 판단과는 무관한 지극히 개인적 미적 기준에 의한 것으로 입었을 때 만족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우선시한다.

래글런 티셔츠는 원칙적으로는 김건모 같은 왜소한 체구의 단점을 더욱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어깨가 넓은 체형이 래글런 티셔츠를 입으면 옷태가 나지 않는다. 김건모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90년대 당시 노래뿐 아니라 ‘컬러풀 그런지 패션’으로 화제가 된 것처럼 그가 선택한 래글런 티셔츠 역시 디자인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 오히려 자신에게 어울리는 피트를 찾았다.

또 배트맨 일러스트는 슈퍼맨, 마블 시리즈 영웅인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과 달리 팝아트적인 단순화된 실루엣으로 인해 패션에서 스테디셀러처럼 적용된다.

더셀럽 포토
스타일 강박 측면에서 래글런 티셔츠는 충분히 명분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패션이 T.P.O라는 애티튜드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옐로 바탕에 검은 박쥐가 그려진 배트맨 일러스트에 보이는 집착은 보편타당한 강박의 범위를 넘어섬을 부정하기 어렵다.

혹자는 이를 두고 ‘변태’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지만 일반적 소위 변태적 성향을 드러내는 ‘패티시’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지나친 억측이다. 배트맨 일러스트에 대한 김건모의 강박은 낮과 밤이 다른 이중적 성향의 우울한 영웅 배트맨에 관한 동경과 동일시를 향한 욕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배트맨의 또 다른 자아이자 실체인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박쥐에 대한 공포감을 박쥐 형태의 의상을 입고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극복했다. 선량한 기업가인 브루스 웨인은 밤이 되면 박쥐 의상을 입고 썩은 도시 고담시를 날아 다니며 악을 소탕한다.

이처럼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면서 브루스 웨인이 아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브루스 웨인를 자아분열과 복장도착증을 가진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 ‘배트맨’은 ‘슈퍼맨’처럼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 영웅’이라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낮에는 고뇌하는 지성미, 밤에는 마초 남성미, 두 극단의 이미지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여성들은 영웅이면서 동시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배트맨 로망’에서 빠져나왔지만 남성들 중 일부는 여전히 ‘배트맨 판타지’ ‘배트맨 이상’을 품고 있다.

라캉의 욕망 이론을 근거로 패션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엘리슨 벤크로포트는 그의 저서 ‘패션과 정신분석학’에서 “패션은 결여로 생겨난 주체성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서 해석될 수 있지만 이런 시도는 끊임없는 실패를 거듭하게 돼있다”라며 옷과 욕망의 끊을 수 없는 결부를 언급했다.

이처럼 패션을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동일시와 욕망은 결여를 에너지원으로 증폭된다는 점에서 대중이 김건모의 배트맨 티셔츠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텍스트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된다.

단 이러한 단편적인 관점이 대중이 한 개인을 이해하는 전부로 설명된다면 이는 다중의 또 다른 편협인 ‘단정의 오류’로 빠져들 수 있다.

[더셀럽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스포츠투데이 제공, SBS ‘미운 우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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