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천우희 “맷집·뚝심으로 버텼던 시기 있었죠” [인터뷰]

인터뷰 2019. 10.21(월)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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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셀럽 전예슬 기자] 매 작품마다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천우희. 그가 ‘버티고’(감독 전계수)를 통해서는 현실을 살아가는 30대 여성으로 분했다. 20대를 지나 진짜 세상으로 들어온 30대. 그리고 그 세대를 살고 있는 천우희. 그가 ‘버티고’로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자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천우희를 만나 ‘버티고’와 관련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무비다. 천우희가 맡은 인물은 일과 사랑, 현실이 위태로운 계약직 디자이너 서영이다. 서영은 평범한 생활을 꿈꾸는 30대 직장인이지만 그의 일상은 하루 종일 위태롭게 흔들린다. 비밀 사내 연애 중이던 진수(유태오) 마저 그를 떠나면서 힘겹게 버티던 서영의 일상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서영을 보면 최근 미디어에서 보여줬던 주체적인 여성이 아닌, 수동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서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고충은 없었을까.

“요즘 워너비 느낌은 주체적이거나 히어로 무비처럼 강하고 당당한 여성상을 더 보여주는 게 주가 된 것 같아요. 지금 보이고 있는 캐릭터들이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아직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눈에는 수동적으로 보일지언정 서영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본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족, 연인, 사회생활 등을 유지해나가고 싶은 욕심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을 한 거죠. 누군가에게 갑갑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서영의 상황과 비슷한 사람에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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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진주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그가 맡았던 캐릭터의 설정도 30대 여성이다. ‘버티고’ 속 서영은 또 다른 서른의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다.

“‘버티고’ 같은 경우는 작년 이맘 때 촬영을 했고, ‘멜로가 체질’은 올 4월부터 8월까지 촬영을 했어요. 우연치 않게 연이어 붙은 작품이 30대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제 나이대의 작품을 한다는 자체가 만족스러워요. 나이와 상관없이 어린 역할, 나이가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는데 가장 현실감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두 작품을 하게 됐죠. 아예 결이 다르니까 배우로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운이 좋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시는 분에 따라 서영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진주가 와 닿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서영은 빌딩 안에서 거대한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부유하며 일상을 견뎌내는 인물. ‘직장인’이라는 직업 설정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서영’이 겪고 있는 일상 자체는 자신과 닮아 있다고 느낀 천우희다.

“서영이처럼 극적인 상황에 처해보진 않았어요. 표면적인 상황에 의해 공감하기보다 힘겹고 능숙하지 못한 것들에 공감할 수 있었죠. 20대를 막 지나오면서 자리 잡고, 노련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잘 해내기란 쉽지 않아요. 제가 직장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그 불안한 시기, 나이대를 경험해봤기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천우희에게도 버텨야하는 시기가 존재했다. 앞선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그는 “작년에 연기적인 의욕이 떨어져있었다. 미약하지만 내레이션, 드라마 속 새로운 모습 등 제 나름 여러 시도들을 했다”라고 밝힌 것. 인터뷰에서 떨어졌던 의욕을 다시 끌어올려준 원동력을 묻자 ‘버티고’를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손을 놓고 싶었어요. 그런 순간을 처음 겪어 봐서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지나가야할지 몰랐었죠. 지금까지 꿋꿋하게 스스로 ‘나는 맷집이 좋아, 뚝심이 좋아’라고 하면서 잘 버티고, 견뎌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을 맞닿았을 땐 당황스럽더라고요. 어떻게 대처해 가야할지 몰랐어요. 뭘 하려고 노력하진 않았어요. 의욕을 앞세워 뭔가를 하기 보단 다른 사람 의견을 따라봤죠. 연기외적으로 부담감을 줄이고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제안을 따르다 ‘버티고’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여기서 받았던 나름의 위안을 제가 연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의욕을 찾았어요. 이후로 계속 해나갈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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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버티고’ 속 매 신마다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대부분 쇼트들이 클로즈업과 와이드한 쇼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쇼트의 대비를 통해 서영의 고통의 본질인 ‘공간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클로즈업을 통해 스크린에 가득 채운 서영의 얼굴은 영화관을 나선 이후로도 잔상에 남을 것이다.

“클로즈업이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제 얼굴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와요. 배우로서 장점이지만 장면에 대한 의도, 앵글, 감정, 표현이랑 맞지 않으면 동떨어질 수 있죠. 미묘한 차이가 커서 부담스럽다 보다는 집중을 요했어요. 카메라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서영의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죠. 어떤 표정, 감정을 드러내야지 보다는 그 순간에 놓이면 충분히 담길 거라는 나름의 신뢰를 카메라에 전하려 했죠.”

고층빌딩 안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서영의 감정을 따라가던 ‘버티고’는 영화 중반까지 현실을 그려낸다. 그러다 고층 빌딩에서 맞이하는 클라이맥스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녹아있다. 현실에서 판타지적으로 넘어와 해당 장면을 해석하는 이들은 극명하게 나뉠 것으로 보인다. 천우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감독님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지막이에요. 표면적으로는 멜로고 여인이 연인에게 상처받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그게 중점이 아닌 불안하고 불안정한 존재들이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알고, 그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상대방 마음을 알고 손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남녀 사랑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교감이라고 느껴졌죠. 물론 제가 느끼는 감정은 답이 아니에요. 보는 관객들도 의견이 다를 거예요. 감독님도, 배우들도 달랐으니까요.”

지난 16일 전야 개봉한 ‘버티고’는 개봉 2주차에 접어들었다. 극장가로 발걸음을 옮길 관객들에게 천우희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여성 중심의 영화이다 보니까 그런 색깔이 있을 거고 색깔도 충분히 나왔으면 해요. 한편으로는 여성의 이야기로 국한되는 게 아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분명히 공감하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영화, 30대 여성이 타깃이 되는 게 아닌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내 이야기지’ 하면서 위안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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